임시저장시설만 확충하는 공론화 돼서는 안돼

▲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 1월16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 재검토 및 공론화 진행을 요구하고 있다.

캐나다 공론화 3년 준비 과정 면밀히 검토해야
원전 밀집 울산, 부산지역 주민 입장 우선 수렴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고리1호기 영구퇴역식 자리에서 국민의 안전과 대한민국의 영구적 안전을 위해 더 이상 친원전 정책을 지속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의 반발이 컸음에도 거시적 차원에서 에너지문제를 전면 재검토하자는 의미가 강했다. 

탈원전 정책 추진과 함께 문 정부가 박근혜 이명박 정부와 달라야하는 점은 ‘진정성’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6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공론화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 재검토”를 포함시켰다.

이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2018년 5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 준비단’(이하 재검토준비단)를 발족했고 재검토준비단은 5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간 논의한 내용을 ‘정책건의서’로 11월 27일 산업부에 제출했다.

이 계획 안에는 원전 내 사용 후 핵연료의 건식저장시설을 확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로부터 3개월여가 지나고 있지만 재검토준비단에서 공론화 일정을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인물을 규합하여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초안 조차 불투명하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원전 외부에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확보시점 이전까지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을 확충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계획(안)’을 발표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의 방폐물 법안은 원전 부지 내에 임시저장시설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 마음대로 지을 수 있었다.

원전 운영사업자가 폐기물까지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독일의 경우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는 별도의 안전전문기관인 티유브이 코센에서 담당하고 있다.  

지난 1월16일 울산시청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 공론화에 대한 입장을 밝힌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용석록 공동위원장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과 최종처분장 마련을 하지 못하면 원전 가동도 멈춘다는 전제로 공론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임시저장시설 추가건설 여부를 원전 소재 지역으로 국한해서 논의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용 위원장은 “이번에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공론화 문제가 이슈화되지 못한다면 지난 1986년 전두환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30년 넘게 마련하지 못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원전 소재 지역에 ‘임시저장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될 것이며 최종처분장은 언제 어디에 건설할지 논의가 진척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는 원전이 가동된 지 40년이 넘었다. 원전 가동 후 나온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지난 40년 동안 원전 부지 내에 있는 ‘임시 습식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다.

습식저장시설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열을 식히기 위한 임시저장시설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습식수조에서 약 5년 정도 열을 식힌 뒤 안전성이 확보된 ‘중간저장시설’에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는 중간저장시설과 최종처분장이 없다. 따라서 모든 원전의 습식저장시설은 40년 동안 ‘임시’라는 이름으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중간저장시설’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안전규제, 건설과 운영규제가 없다. 이유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 프링스, 캐나다 등 원전 선진국 기준에 맞추려면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임시저장시설, 중간저장시설, 최종처분장 부지 선정은 모두 지질환경 정보(지진위험도, 활성단층, 수문학적 안정성, 처분장 암반의 적합성)를 거쳐 지리적 적합성(이동, 보관, 관리, 자연, 인문), 자연재해 영향(복합재난, 지반붕괴, 산사태, 홍수, 기후변화), 주민수용성(공론화, 신뢰성) 순으로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안에 공론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통해 축적한 경험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몇 개월 안 되는 짧은 공론화 기간으로는 제대로 된 공론화를 진행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장점인 진정성을 공론화위가 받아들여 충분히 논의하고 수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용석록 공동위원장은 “독일 공론화위원회가 만든 홍보영상은 티비를 켜는 순간 안방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 떨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며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문제는 전기를 쓰는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처분과 관리방안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우리보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공론화를 경험한 캐나다의 경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캐나다 원자력공사(AECL)는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관리방안으로 심지층 처분 방식을 제시했으나 1998년 Seaborn Panel에서 심지층처분은 기술성, 안전성 측면에서 타당한 대안이나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대안이 아님을 권고했다.

이에 캐나다 정부는 4년후인 2002년 11월 이러한 문제점 해결을 위해 핵연료폐기물법(Nuclear Fuel Waste Act)을 제정하고 방폐물관리기구(Nuclear Waste Management Organization. NWMO)를 설립하여 공론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캐나다 방폐물관리기구(NWMO)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 보고서를 3년내 작성하여 정부(천연자원부 장관)에게 보고토록 의무를 부여했다.

캐나다 방폐물관리기구(NWMO)가 검토대상으로 삼은 대안은 ▲제1안 : 심지층 처분(지하 500~1000m, 30년간 운영) ▲제2안 : 소내 중간저장(50년간 저장) ▲제3안 : 소외 집중저장(100~300년간 운영) ▲제4안 : 단계적 관리(Adaptive Phased Management)였다. 

캐나다 정부는 2002년 10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3년간 공론화단계를 거쳤다. 

공론화 1단계(2002.10~2003.05)는 기대치와 목표에 대한 의견수렴이었다.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토착민 단체, 원전 근로자 및 지역주민, 환경단체, 산업계 전문가, 종교단체, 정부, 의회 등 250여명과 대면토론을 통해 서로의 관심사항을 확인했다.

공론화 2단계(2003.05~2004.03)는 근본적인 문제 탐구 기간이었다.

캐나다인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반영하는 평가 분석틀을 개발했는데 공론화위원회 인적 구성 대표 462명이 참여하여 가치를 위한 국민대화, 국민설문조사(1900명 대상) 실시, 이해관계자 및 원전지역 대화 등을 실시했다.

공론화 3단계(2004.04~2005.03)는 관리방안 평가 기간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기 심도 있는 검토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이해관계자 및 원전지역 대화, E-dialogue(화상테이블회의로 전문가, 젊은이 등 약 700여명 참여), 학습 및 토론강좌 운영(120여회 개최), 원전 지역 오픈 하우스 운영 등을 실시했다.

마지막 공론화 4단계(2005.4~2005.11)에는 보고서를 쓰는 단계로서 ▲보고서 최종 마무리(2005.4~2005.9) ▲정부에 권고사항 보고서를 제출했다. (2005.11)

캐나다 정부는 공론화 결과 제4안인 단계별 접근(APM)에 의한 심지층 처분방식을 권고했다.

▲1단계는 중앙집중식 관리방안 준비(약 30년)-중앙 집중 중간저장부지 확보시까지 원전내 사용후핵연료 저장 관리 ▲2단계 중앙집중식 저장(약 30년)-처분시설 건설 전까지 중앙 집중 중간저장부지에 지하저장시설 운영 ▲3단계 회수 가능 심지층 처분-심지층 처분 및 폐쇄 후 관리(회수 가능 연구 지속) 방안을 권고했다.

우리가 캐나다 공론화 과정에서 눈여겨 볼 점은 관리대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평가기준에 따른 장단점 분석을 통해 평가 결과에 대한 공정성과 수용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안별로 개념, 부지위치, 운반요건, 저장용기, 처분용기, 부지요건, 해체, 회수, 이행계획 비용 등 분야별 분석을 통해 ①공정성 ②공공의 건강과 안전 ③작업자의 건강과 안전 ④안보 ⑤경제성 ⑥지역사회의 복지 ⑦환경친화성 ⑧적용성 등을 충분히 거처야 한다는 점이다.

논의 과정 중 유연성을 발휘하여 기존 대안 외에 단계적 관리방안(APM : Adaptive Phased Management)이라는 별도 대안을 개발한 점도 깊이 눈여겨봐야 한다.

정부에서 단계적 관리방안(APM)을 채택한 후 시민, 후보지역 지자체 등이 지속적 참여를 보장하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 준비단은 캐내다와 같은 시나리오별 대응매뉴얼을 작성하고 늦어도 3월 안에는 공론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특히 원전이 밀집한 울산, 부산시민들의 입장을 우선 들어보아야 한다.

이를위해 재검토준비단은 공론화를 전국공론화와 지역공론화로 나누어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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